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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

2001년 국토대장정을 기억하며.. 나의 첫 여행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언제나 2001년을 지목한다. 한여름의 30일간 땅끝마을-부산-임진각을 찍으며 걸었던 그 길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팀원들과의 의견 충돌과 체력적 한계와 하루하루 싸워야만 했고, 세상과 타협하며 앞을 향해 내딛던 걸음들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정렬과 여유를 부러워하며 또다른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킬 결심뿐이다. 더보기
20010702 일지 2001.07.02 서울~광주 (기차) 준, 흙, 용 6시 조금 넘어서 집에 흙이 도착. 짐 정리후 20시 50분경 집에서 출발하니까 서울역에 커뮤니티 친구들이 서울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롯데리아에서 약간의 수다하던 도중에 집에 놓고 온 물건들이 생각나서 전화하니 죄송스럽게도 아버지께서 주무시다 손수 티셔츠들과 흙이 시계, 깃발 등을 가지고 오셨다. 뒤늦게 주현이가 도착해서 자기도 가겠다고 땡깡으로 소란을 피우다가 자포자기했다. 기대했던 동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열차시간이 다가오는데 용이 오지 않아서 초조해 하는데 열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승차를 시작했다. 간신히 도착한 용과 함께 기차를 타러 가는 도중에 장소를 헷갈려 이리저리 머 빠지게 달라다가 겨우 승차하게 되었다. 열차는 서울을 떠났다. +흙.. 더보기
20010703 일지 2001.07.03 삼성마을~군동면 약 30km 준, 흙, 현, 용 -면 복지회관 (전라남도 강진군) 하루종일 걸었는데 그것이 아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나도 이것저것 이류를 가지고 여행을 하고 싶지만 가방을 들면서부터 초조해진다. 쉬는 것, 먹는 것, 모두 아깝고 아깝다. 천천히 가다간 부산까지도 가기 힘들다고 생각된다. 내가 왜 이래야만 하지 그런 것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히치하는 것는 더욱 싫다. 그건 내가 원하는 대장정이 아니니까 스스로의 힘으로 걷는건데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나와 조금 다른가보다. 편하게 관광하면서 가고 싶은 것. 잘 알지만 힘들다. 스스로의 여유가 없는 것, 인정해야겠지. 삼성마을에서 아주머니께서 퍼주신 아주 여유로운(아주 많은) 양의 밥을 먹으며-전라도 음식은 무척 .. 더보기
20010704 일지 2001.07.04 매우 더움 군동면~보성읍 약 25km (실제거리 약 33km, 히치 이동 제외) 준, 흙, 현, 용 -서부교회 (전라남도 보성군) 드디어 여행 3일째를 맞이한다. 3일째가 고비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오늘은 피곤함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서서히 적응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기현이도 재미있어 해 하는 것 같다. 친절하신 경찰분들이 계신 파줄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보성을 향해 출발했다. 오늘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가게에서 아주머니께서 수박을 먹게 해주셨다. 하지만 그 친절한 인심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가게도 없고 주유소도 없는 곳에서 우린 물이 바닥나는 비상사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트럭을 몰고 가시던 아저씨께서 차를 태워 주셨다. 도보여행하면서 히치를 하냐고.. 더보기
20010705 일지 2001.07.05 보성읍~조성면 대동리 약 10km 준, 흙, 현, 용 -집 (전라남도 보성군)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루종일 삽질했다. 벌교로 가는 길에 어느 농부 아저씨의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2~3시간 일해 주면 점심과 차비를 주겠다는 말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하루종일 붙들려서 세 개의 밭을 일궈야 했다. 모두 손에 물집이 잡히고 발에는 물집이 터졌다.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다. 또 언제 이렇게 손이 까지도록 삽질을 해보랴. 삽질의 기본은 기술이다. 좋은 장소에 삽을 꽂고 약 35도 정도로 각을 맞춘다. 그리고 잡 머리 부분을 다리를 구부리며 무릎으로 살며시 눌러주면 삽은 흙속으로 쑤욱 들어간다. 이것이 흙을 얇게 져미는 방법이다. ㅡㅡ;; 일을 마치고 먹는 저녁은 정.. 더보기
20010706 일지 2001.07.06 흐림. 가끔 이슬비. 대동리~별량면 약 26km -마을회관 (전라남도 순천시) 날짜감각, 요일감각이 모두 꽝이 되어벼렸다. 손목에 걸려 있는 시계만이 하루의 시간을 알려줄 뿐이다. 지금 우리에겐 날짜보다 '시'라는 단위가 더 소중하게 되어버렸다. 그것이 생활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어버린 탓이다. 어제는 피곤한 관계로 빨리 잠이 들었다. 다시 어제 얘기를 꺼내자면 잠이라는 것도 무지 좁은 방에 주인집 아들내미 영현이까지 가세해 5명이서 미어터지고 더위에 죽을 뻔했다. 11시까지 자지도 못하다가 7시 반에서야 겨우 일어났다. 모기에 많이 물렸는데, 그 얘기를 하자면 고무신을 신고 삽질하면서부터 그 공포는 시작되었는데 수로를 파는 데부터 수많은 모기에 시달리다가 (다리 모기자국의 50%가.. 더보기
20010707 일지 2001.07.07 더럽게 맑음 별량면~광양읍 초남리 초남마을 약 32km -마을회관 (전라남도 광양시) '날라 다니는' 벌레들이 싫어진다. 모두 힘들겠다고 걱정하는데 그다지 필요치 않은 걱정이다. 생각보다 편히 지내니까. 우리나라 인심은 생각보다 많이 좋았다. 어디를 가도 그렇게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사진을 정말 재밌게 찍었는데 필름이 없었다. 고로 헛찍었다. ㅡㅡ;; 오늘은 많이 걸으려 했지만 늦게 일어난데다 흙의 안경이 부서지는 바람에 시내에서 안경점을 찾느라 많이 지체했다. 이제까지 맞이한 마을 중 가장 큰 규모라 조금 당황하기 까지 했다. 서울에 사는 녀석이 이만한 크기에 당황한 것이 이상하겠지만 편의점을 본 우린 감동의 눈물을 흘린뻔 했다. 여행 6일만에 처음 보는 편의점이었던 것.. 더보기
20010708 일지 2001.07.08 역시 더럽게 맑음. 초남마을~고전면 고하리 약 39km -교회 (경상남도 하동군) 어느 교회에서 묵고 있는 이 밤. 흙에게 관대한 팀원들은 8시 예배를 허락하고 같이 주일 예배를 드린 뒤 목사님의 친절한 배려로 옆 강당 한켠 방에서 자게 되었다. 오늘 기억은 이장님 딸의 자는 모습을 뒤로하고 아무 생각없이 걷기만 한 것이다. 바다를 보기 위해 흙의 농간에 빠져 지방도를 탔지만 달리는 공사 차량으로 인해 모래만 맞고 국도 타는 것 보다 배로 돌뻔 했다. 가도가도 이글거리는 넓은 길에 주위는 모두 깎아 내려서 그늘도 없었다. 그리고 길었다. 이장님 딸만 아니었어도.. 광양 제철소를 통과 했는데 햇빛이 장난이 아닌지라 온몸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이러다가 집에 돌아 갈 때쯤엔 황인종이 아닌 .. 더보기
20010709 일지 2001.07.09 또 더럽게 맑음. 고하리~축동면 하탑마을 약 30km 준, 흙, 현, 용 -마을회관 (경상남도 사천시) 잠자리를 찾아 파출소에 가보니까 잠자리를 잡아 주셨다. 마을 회관이었다. 이장님을 찾아 주유소를 찾아가니 이장님 부인께서 라면 가게에 데려다 주셔서 그곳에서 라면을 먹고서는 회관으로 돌아왔다.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고 씻는 곳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회관 안에 수도가 있어서 손을 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내일은 목욕탕이나 사우나, 찜질방을 가자고 난리다. 나도 가고 싶지만 야간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걱정이 된다. 파출소 앞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여기서 잘 것인가 아니면 밤새 걸은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흙과 현은 위험하다면서 이 곳에서 자자고 한다. 난 밤새 걸어 .. 더보기
20010710 일지 2001.07.10 구름 낌. 하탑 마을~고성읍 월평리 약 34km 준, 흙, 현, 용 -마을회관 (경상남도 고성군) 날씨는 좋았다. 아침에 마을회관은 언제나 그랬듯 외부에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찾아보니 결코 사람이 용변을 볼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없는지라(그럼에도 불구하고 흙이라는 인간은 그것을 해냈다) 거기다 어제 씻지 않고 자는 수모까지 이장님이 운영하시는 주유소에서 깨끗이 해결하고 사우나(or 찜질방)을 무지하고 싶었으나 고성까지 오는 길에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도시가 아닌 곳에서 무엇을 기대하랴. 새벽에 일어났기 때문에 하루종일 걷다가 휴게소의 산채비빔밥과 된장 찌개를 먹고 쉬는 김에 푹 퍼질러 오래 있었더니 결국은 쫏겨났다. 흙이 도수 20짜리 썬크림은 자외선을 '절대' 막지 못하였기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