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nother thinking

音:: 유발이의 소풍, 천천히 다가와

 

 

Artist::  유발이의 소풍 

Members::  유발이

                  ;  Site  [http://club.cyworld.com/ubare]

Album::  천천히 다가와

Agency::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코라아;  Site  [http://www.sonymusic.co.kr/

Records::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코라아; Site [http://www.sonymusic.co.kr/]


봄이 다가오고, 그 기운을 느낄 사이도 없이 진공 같은 바쁨이 나를 맴돈다. 아침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도림천을 따라 출근을 하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종이컵에 가비 스틱을 휘휘 저어가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점심이 되면 공원으로 나와 테이크아웃한 햄버거를 씹으며 일광욕을 한다. 햇살에 피부가 상할라 그늘에 앉아 발과 손만 슬쩍 볕으로 내민다. 공원을 나와 빌딩 숲을 한바퀴 돌고 나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자일리톨을 씹는다. 눈이 15인치 모니터에 멍해질 때쯤 필립스 헤드폰을 귀에 걸고 음악을 틀면 '유발이의 소풍'이 흐른다. 김창완씨의 도레미송과 유발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지나가고 엄태웅의 고백하는 날이 들릴때면 음반이 벌써 한바퀴 돌아갔구나 싶다. 이래저래 마지막 업무를 끝내고 이메일을 보내고, 멍하니 자리에 머무른다. 이어폰을 끼고 1층으로 내려가 길게 늘어진 붉은 태양에 눈을 가리며 빌딩 건너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훈제달걀 두개와 저지방 불가리스를 구입한다. 사무실에 앉아 PPT 앞에서 달걀을 야금야금대며 빨때 꽂힌 불가리스를 소중하게 마신다. 사무실이 텅텅 비어가고, 관리인이 들어와 불을 끌때 쯤, 자켓을 입고, 가방을 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이어폰이 눌리도록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탄 나는 가로등이 줄지어 비추는 자전거 길을 따라 밤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길 내내 유발이의 음악을 흥얼거린다. 솔직하게 처음 음반을 다 듣고 나서 어.. 어.. 기대한 음악이 아니었다. 어느부분은 너무 프로 같았고, 어느부분은 너무 아마추어 같았다. 12개의 트랙이 돌아가는 시간에 한명의 뮤지션이 아니라 셋넷의 뮤지션이 지나갔다. 누구는 사춘기소녀 같이 발랄했고, 누구는 영글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사람은 경험을 먹고 자라난다. 어느 시기에는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나기도 하고, 어떤 시기에는 너무 적게 먹어 배고파한다. 뒤를 돌아보면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져있는 나를 보게되고, 때론 변하지 않는 자신에 실망하고 우울해한다. 소풍을 나선 유발이는 그녀 자신의 음악을 여유 혹은 사치 중 어느 것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에너지가 소녀의 주위로 넘치고 있음은 잘 느껴진다. 



그녀의 음악은 아침의 달리기 같다. 삶은 천체의 물리법칙처럼 정해진 뒈도에서 벗어나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도약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관성의 법칙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새벽에 잠을 깨며 눈을 떠야하고, 눈을 비비며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야 한다. 두둑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날엔 이불 깊이 파뭍히는 기분을 경험하게 된다. 신발을 신고 스산하고 냉냉한 바람을 맞으며 뻗뻗하게 굳은 팔다리를 펴며 스트레칭 한다. 피부가 찢어지고 뼈마디가 분리되는 고통은 시원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폐 깊숙히 찔러오는 찬공기가 몸을 얼어 붙게 만들기 전에 지면을 구르며 냉기를 털어낸다. 처음이 주는 고통들과 관성이 주는 편암함 사이에는 종이 한장이라는 간극만 존재한다. 매 순간의 선택이 좀더 먼곳으로 인도하게 만든다. 그녀의 음악은 나아가기 위해 쥐어짠 고통의 즙이다. 생명의 물이며 영혼의 결정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노래가 처음듣는 이에게 익숙치 않게 들린다. 그러다 문득 이 편치 않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람이 더 높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형상이다. 술은 약한 도수에서 부터 시작하고, 보코와 나가수를 보다보면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오디션 프로그램이 싱거워 진다. 어느 순간 자신이 네임드 제품과 서비스에 열광하고, 고상한 상류사회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과도한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관성은 그러한 것이다. 더 욕심을 부리는 것. 하지만 바르다는 것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발전하는 것은 같은 길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벼는 성장을 정지하는 것이 아니다. 성장을 하기위해 아래를 본다. 식물은 하늘 끝까지 자라기 위해 고집부리 않는다. 오히려 때가 되면 영양분을 얻기 위해 투쟁하며 살아온 노력의 결실들을 땅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그들과 다시 경쟁을 한다. 삶의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자연계에도 인간처럼 태어나지 않은 가능성을, 발아하는 싹을 짓밟지 않는다. 인간과 동식물들이 중력을 거스르며 성장한다고 하지만, 후자와 달리 인간은 경로의존성에 빠져 근원을 돌아보지 못한다. 삶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상하한선을 정하지 말아야 한다. 배철수가 말했다. 자신은 요즘 나오는 음악도 듣는다. 좋고 나쁜 음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다른 음악들이 있는 것이다. 유발이의 소풍은 참신하다. 어딘가 긁적여 놓은 글처럼 자랑스러우며 부끄럽다. 하지만 감추려하지 않는다.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음악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음악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기준이다. 우리가 인정하는 인재들은 다른 사람의 룰이 아니라 자신의 룰을 갖는 사람들이다. 앞으로의 유발이가 기대된다. 볼만하지 않나. 매너리즘을 빠져나간 그때쯤이면 소풍이 아니라 유발이의 여행이 되겠지?

12곡이나 되는 앨범전체를 리뷰할 엄두는 내지 못하겠다. 하지만 유발이는 분명 유별나다. 그녀는 위로 성장한다기 보다, 옆으로 성장중이다. 날카로운 세로가 아니라 넓은 가로다. 돌아보고 후회하기 보다 양분으로 삼는다. 나아가기 위해 올라서려 하기 보다, 공감하며 살아보자며 손을 내민다. 그녀는 분명 목소리와 외모가 빼어나지 않다. 하지만 마음이 빼어나고 생각은 둥글다. 사람들은 미인을 좋아한다. 유발이는 미인일까? 분명히 미인일 것이다.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찍어낸 대량생산의 미인보다 만배는 더 예쁘다. 이 앨범은 그녀의 종합선물세트이다. 소풍 나올때 싸온 오첩반합이다. 그녀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앨범이라 호불호가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것은 유발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좋아서 하는 음악이니까.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