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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about pets

수전 손택과 사진





- 진동선(2011), 사진철학의 풍결들, p254-259,


..중략
2004년 12월 28일 뉴욕 메모리얼 슬론 캐터링 암센터에서 숨을 거둔 그녀의 영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저항에는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해야만 할 일이다."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는 '플라톤의 동굴에서'로 시작하여 '이미지-세계'로 끝맺음한다. 전체 내용은 무엇이 참된 이미지이며, 무엇이 진리를 향하는 참된 등불인가를 묻는 것이다. 철학자답게 그녀는 사진의 줄기들을 따라 줄기차게 자각, 반성, 성찰의 시선을 던진다.
  첫 번째로 '바라본다는 것의 근본 윤리'를 묻는다. 요절한 사진가를 향한 윤리문제이다. 그녀가 찍은 사진의 윤리이면서 사진가를 향한 윤리이다.
  두 번재로는 '만족할 줄 모르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진의 시선이기도 한다. 왜 그토록 카메라만 쥐면 이미지 사냥꾼이 되어버리는가? 왜 그토록 먹이를 찾는 약탈자가 되는가? 허기진 이리 때처럼, 약탈은 누가 지시하며, 누가 조장하는가? 다이안 아버스의 자기고백처럼 성찰, 반성, 자각을 희망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못된 직이죠."

  과연 모든 사진은 근원적으로 폭력적인가. 모든 사진은 무자비한 포획과 탈취의 결과물인가. 결과물에 대해서 사진가들은 어떤 양심의 가책도, 반성도 불필요한 정당한 특권을 가진 것인가.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의 시선과 탈취의 권리는 누구로부터 양도된 절대적 권능인지를 생각해본다.
  이에 대한 수전 손택의 바람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어둠의 동굴에서 자신을 비춰보는 반성의 거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획한 피사페를 향한 부단한, 끊임없는 반성을 뜻한다. 둘째는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는 이성적 자각이다. 예쁘고 아름다고 화려한 것만 추구하는 차별적인 남용, 오용에 대한 이성적 자각이다. 수전 손택은 이 두 가지 이상적인 사례를 다이안 아버스에게서 찾은 것 같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한탄하기도 했다. "오늘날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버렸다."
  다이안 아버스의 죽음 앞에서 수전 손택이 제기한 마지막 한 가지는 '시각의 영웅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돋보이고 싶어 하는 극단적인 시각적 공명심에 대한 경각이기도 하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했다. "사진을 통해서 추한 것을 찾으려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은 사진을 통해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왔다. (...) 카메라가 이 세계를 미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한 탓에, 이제 세계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이 아름다운 것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멋진 것을 찍으려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 찍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이 같은, 시각의 영웅주의 혹은 극단적인 사진의 공명심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본능인가 아니면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학습 효과인가?
  아름다움에 눈이 멀고, 돋보이는 것들에 탐닉하는 것. 그와 반대로 더럽고 기이하고 추한 것을 외면하는 태도. 수전 손택은 극단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아니면 치유할 수 있는 질환인지 묻는다. 이 부분에서 다이안 아버스가 죽기 직전까지 찍은 일련의 사진들을 강조한다. 기형을 지닌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을 찍은 사진, 냉대하는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주목과 환기.
  사진에는 우리가 간과하지 못한 폭력성이 있는가? 있다면 얼마나 자연스럽게 만연되어 있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성인가? 사진에서 사용되는 모든 용어들은 남성적이고 카메라의 생김새조차 남성적이다. 물리적 폭력성으로 무차별적인 이미지 포획을 행한다. 약탈(수전 손택의 표현에 따르면)의 폭력성이 있다. 정신적 폭력성으로는 극단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쁜 것만 찍겠다는 시각적 영웅주의와 공명심. 수전 손택도 사진의 태생적인 조건을 인정한다. 그러나 반성 없는 남용과 오용은 비판한다.
  카메라의 무차별적인 포획 아래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긴다.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것만 추구하면 그렇지 못한 것들은 상처 입는다. 어둠을 더욱 어둠으로 몰고 가게 되는 것이다. 손택은 이 같은 어둠을 암울한 어둠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마지막 말을 각색하면서 끝을 맺는다. 

  모든 어둠은 상상이다. 보이지 않아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할 수 없어서 상상한다. 보인다 해도 감각할 수 없다면 모두 어둠이다. 나는 사진을 사랑한다. 사진이 보여주는 세상을 사랑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에 찍히는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도덕적 한계와 사회적 금기를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여권을 갖도록 한다. 그것이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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